고대 로마 경기장은 어떻게 세계적 오페라 하우스가 되었나
역사를 보유한 베뉴가 살아남는 법 I
과거 특정 목적 하에 지어진 건축물이 현대에 와서 그 쓸모를 다해 해체냐 보존이냐를 두고 논쟁하는 경우가 많다. 기능적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역사적 상징으로 인해 보존해야 할 경우 건축물의 쓰임새에 대한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오래된 공간을 현대적으로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레나 디 베로나 – 세계에서 가장 큰 오페라 하우스의 탄생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보면 대형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결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 로마에는 이처럼 제국의 귀족들이 격투기 등을 하기 위해 지은 원형 경기장이 많다. 로마의 콜로세움과 카푸아 경기장, 그리고 베로나의 아레나 디 베로나가 대표적인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들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현재 관점에서 기능적으로 전혀 불필요하지만 여전히 그 역사적 가치 때문에 보존되고 있다. 물론 보존이라고는 하지만 활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곳곳의 돌이 뜯겨 나가거나 건물 한쪽이 빈민들의 주거지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베로나의 아레나 디 베로나는 오래된 공간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때 이곳도 경기장 한쪽이 빈민들의 주거지로 쓰일 만큼 방치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1910년 우연히 이곳을 지나던 이태리의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은 동행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아레나 한 가운데서 바이올린을 켜보게 했고, 이 소리를 스탠드에서 들은 세라핀은 돌로 이루어진 이 원형 경기장의 공명에 놀라게 된다.
이때부터 이곳은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들이 반드시 한번은 들려야 할 세계적 오페라 공연장이 되었다. 아이다, 카르멘, 투란도트, 리골레토 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오페라 공연이 매년 이곳에서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이름하에 열리는 것이다.
아레나 디 베로나가 다른 고대 시설들과는 달리 단순히 시설의 보존을 넘어 오히려 세계 최고의 오페라 공연장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것은 단순히 이태리의 어느 한 고대 경기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보유한 공간을 두고 보존이냐 해체냐의 갈림길에서 새롭게 시설을 탄생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첫째, 건축물의 의미보다 건축물의 물리적 특성을 파악하라. 아레나 디 베로나가 오페라 공연장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음악가의 우연한 연주 때문이었다. 고대 건축물, 특히 거대한 돌로 구성된 경기장의 공명은 다른 건축 재료보다 훨씬 크기에, 바이올린이 연주되는 순간 울려 퍼지는 소리가 그 어떤 공연장보다 훨씬 명징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간파하여 이 경기장은 마이크 없이도 공연이 가능한 오페라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것은 공간이 갖는 역사성의 크기에 압도되어 다른 용도로는 활용되지 못하고 그저 단순한 박물관으로서의 역할만 하는 공간들에게 이야기하는 바가 크다. 과거의 스토리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의 관점에서 건축물의 특징을 간파하여 그 특징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용도로 활용하는 것, 이것이 아레나 디 베로나가 부활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이다.
둘째, 수용 가능한 집객 규모를 파악하라. 아레나 디 베로나의 성공에는 수용 가능한 인원의 규모와 그에 따른 수익 창출 모델이 있었다. 아레나 디 베로나는 약 2만 명에서 2만 5천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오페라 티켓 한 장 가격을 10만원이라고 가정하고 하루 1만 명이 입장하면 10억의 수입이 창출된다. 2만 명이 들어온다면 20억 원이다. 즉 대형 오페라 공연의 제작비를 감안하더라도 티켓 매출과 기타 잡수익을 가정한다면 세계적 음악 페스티벌 개최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듯 최대 수용 가능한 규모를 파악하면 그 공간에서 어떤 콘텐츠를 운영할 때 수익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있다. 아레나 디 베로나는 최대 2만 5천명을 한 번에 운집할 수 있는 규모로 인해 세계적 오페라 공연장으로서의 베뉴 비즈니스를 성공시켰다.
셋째, 지속가능한 도시 콘텐츠와 결합하라. 이탈리아는 오페라가 시작된 나라이다. 오페라(Opera)라는 말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작품’이란 뜻이며 이 말속에 독창자와 합창자가 무대 위에서 노래와 연기, 춤을 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오페라는 이탈리아 고유의 문화 콘텐츠이고, 매년 새로운 기획과 주제로 지속가능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그 나라 고유의 콘텐츠가 역사를 품고 있는 공간에서 펼쳐질 때, 이것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장소이며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이 된다. 아레나 디 베로나가 지속가능한 공연장으로서의 운영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 오페라를 주제로 세계 최대의 오페라 축제_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_를 개최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이다.
아레나 디 베로나의 사례는 역사를 품은 공간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활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건축물의 의미보다 건축물의 물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수용 가능한 집객 규모를 파악하여 가능한 수익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도시 콘텐츠와 결합하여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이 세 가지가 바로 역사 공간의 재해석 방법이다.
역사를 보유한 공간이 살아남는 법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유니크 베뉴를 지정하여 마이스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붐이 일고 있다. 특히나 국가적, 지역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통 시설들의 활용은 단순히 보존이라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만남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러나 역사적 공간이라는 이유로 그 역사를 굳이 콘텐츠화 하려는 시도는 자칫 지금의 활용 측면에서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 역사가 갖는 무게 때문에 충분히 다른 용도로 활용 가능한 시설들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아레나 디 베로나의 사례는 역사를 품은 공간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 활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건축물의 의미보다 건축물의 물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수용 가능한 집객 규모를 파악하여 가능한 수익 모델을 만든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도시 콘텐츠와 결합하여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이 세 가지가 바로 역사 공간의 재해석 방법이다. 물론 그 공간 자체의 보존이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경우도 있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과거의 공간이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다면 그곳은 보존을 넘어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적 공간이 될 것이다.
© 브이엠 컨설팅 VM Consulting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