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CES 2025 인사이트: 협력의 시대
기술을 넘어선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 I
CES 2025는 역시나 화려한 기술과 미래를 먼저 가볼 수 있는 가늠자였다. 관련하여 수많은 분석 기사와 다녀간 사람들의 후기가 온라인을 덮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기술의 향연을 뚫고 지나가는 한 가지 중요한 흐름을 다룬 내용은 없어 아쉽다. 그것은 바로 비즈니스 모델의 전환, 즉 경쟁의 시대를 지나 협업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경쟁의 시대에서 협업의 시대로
CES 2025에서 나타난 가장 큰 흐름은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수평적 분업, 즉 협력의 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과거 한 기업이나 국가가 모든 과정을 수직적으로 통합해 기술 개발과 생산을 독점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각자의 강점을 결합한 분업화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 방대한 밸류체인 속에서 혼자 힘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파운드리의 TSMC, HBM 메모리의 SK, AI 반도체의 엔비디아와 같은 기업들이 협력을 통해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CES 현장에서 보여진 대표적 협력의 사례를 정리해 보았다.
엔비디아의 협력 모델: 반도체 생태계의 동맹 강화
CES 2025에서 이러한 협력의 흐름은 엔비디아의 발표를 통해 잘 드러났다. 1월 6일 만달레이 베이 아레나에서 열린 기조연설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차세대 AI 반도체 칩을 발표하며 대만의 마이크론, 미디어텍과의 공동 개발 사실을 공개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려는 전략적 협력이었다. 특히 대만의 TSMC와 같은 파운드리 기업과 강력한 동맹을 구축함으로써 대만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이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사점을 던지는 사례이기도 하다.
델타항공: 경험 마케팅과 협력의 새로운 패러다임
델타항공은 CES 2025에서 협력을 통한 새로운 경험 마케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창립 100주년을 맞아 열린 기조연설에서 델타항공 회장은 유튜브와 우버와의 전략적 제휴를 발표했다.
유튜브와의 협력: 탑승 고객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고객이 기내 좌석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과 동영상을 즐길 수 있도록 기내 모니터를 유튜브와 연동했다.
우버와의 협력: 공항 이동 경로를 기반으로 공항 도착 전후의 차량 예약과 기내 서비스를 연계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델타항공은 CES에서 스피어 돔 무대를 활용해 참석자들이 자동차로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과정을 270도 영상, 바람, 커피 향 등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이는 협력과 경험 마케팅이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임을 직접 체감하게 한 사례였다.
소니와 혼다: 미래 자동차에서 협력의 가능성 탐색
한편 LVCC관에 공동으로 부스를 마련한 소니와 혼다는 CES 2025에서 협력의 힘을 극대화한 미래형 자동차 모델을 선보였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으며, 양사의 강점을 결합해 차량의 경험을 혁신했다.
부스 디자인 또한 동양 특유의 여백의 미를 활용해, 한 대의 자동차만으로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아시아가 미래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협력의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협력으로 성장 기회 발굴
기업 간의 협력은 비단 글로벌 대기업 간에만 일어나지 않았다. 전 세계의 스타트업이 모인 유레카파크에서는 창업한 지 1년 반 밖에 안된 신생 한국 스타트업이 엔비디아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엔비디아 생태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창업진흥원에서 마련한 K-Startup 공동관에 참가한 ㈜그리네타는 1메가바이트 이하의 초경량 3D 오브젝트 개발 기술을 선보였는데 이를 본 엔비디아 부회장이 그 자리에서 직접 공동 협력을 제안하고 MOU를 맺은 것이다. 이외에도 현지 투자자 및 국내 기업들과의 협력 등 다양한 협력 기회를 발굴하고 향후 사업 확장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또한 대만 스타트업 공동관인 TTA와 서울대학교는 유레카파크 현장에서 공동 피칭 무대를 꾸밈으로써 한국과 대만 스타트 업간의 협력의 장을 조성했다. 이는 서울대관의 운영 대행을 맡은 ㈜더웰컴의 기획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행사를 기획한 ㈜더웰컴의 서민제 파트장은 현장에서 “서울대 기업들이 단순히 자기 부스 안에만 머물지 않고 유레카파크 전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아웃보딩의 마케팅 전략을 활용했다”라며 대만 공동관과 서울대관 양쪽으로부터 최고의 기획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하였다.
협력의 시대: 산업 트렌드의 핵심
CES 현장에서는 위의 기업들뿐 아니라 전시장 곳곳이 협력과 동맹의 자리였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이제 어느 한 기업의 경쟁력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나타낼 수 없는 시대이다. 이는 왜 일본이 반도체 산업에서 뒤처지고 대만이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tsmc 세계 1위의 비밀’의 저자인 린흥원은 책에서 “일본은 경직된 폐쇄주의와 글로벌화되지 못한 경영자의 능력 등으로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진 반면, 글로벌 시장은 분업 형태로 진화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만 컴퓨터 산업의 발전은 인텔, MS와의 분업 덕분이었고 TSMC가 파운드리 분야의 세계 1위가 된 것도 IC 설계와 제조가 분리되어 발전한 결과”라고 서술했다. 이는 결국 칩 설계 전문회사인 ARM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종합 반도체 회사인 인텔을 패배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에 주는 교훈
결국 전시회는 산업의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시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산업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가지게 된다. 2025년 새해 벽두에 개최된 CES는 현재의 반도체 산업, 나아가 IT와 결합된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동맹과 협업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자리였다.
우리 한국 기업들도 이제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협업의 기회를 적극 활용하여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더욱 드러내기를 기대한다. 식상하지만 결국엔 자신만의 경쟁력을 끊임없이 갈고닦는 것만이 글로벌 동맹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방법임을 확인하게 된 순간이 올해의 CES, 바로 그곳이었다.
(C)VM Consul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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